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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his article first appeared in our January 2006 issue.

January 2006


조용한 영웅

By Catherine Wayland

그는 자신의 이름은 르로이 E. 피터스지만 , 그냥 핏이라고 불러주세요 , 라고 말할 것입니다 . 비록 나이가 81 세이지만 아직까지 비행기 모는 것을 좋아한다고 그는 말할 것입니다 .

그러나 핏이 큰 소리로 떠들지 않을 말 , 그 말이야 말로 진정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미국 애국가의 가사 한귀절인것 마냥 당신의 귓가에 맴돌게 될 것입니다 .

핏은 제 2 차세계대전에 실전용사로 참전해 전투기를 조종했음에도 불구하고 , 오랜 세월 잘 살아 남아 온 평범한 한 남자입니다 . 한사람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그는 자신이 손수 손 보았던 수많은 엔진들 중 하나처럼 자신의 가족은 ‘ 꽤 잘 조율이 맞추어져 있다 ’ 고 소개합니다 . 핏은 미국의 영웅이므로 , 저는 이 이야기를 쓰게 된데 대해 참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.

핏은 펜실베니아 헬람 지역에서 태어나 자라고 , 결혼하고 , 아내를 잃고 , 재혼하고 , 그리고 나이가 들었습니다 . 그는 1925 년 1 월 16 일날 태어났습니다 . 17 세가 되던 해인 1942 년 징집이 되어서야 핏은 마침내 생의 터전이었던 조그만 북미 한쪽 구석 마을 떠나 세계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. 핏은 미공군으로 징집되었고 , 노쓰캐롤라이나에 있는 버링턴에서 항공훈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.

남쪽지방에서의 훈련은 그가 생각했던 것 보다 일찍 끝나기는 했으나 , 고등학교때 부터 사귀던 여자친구 리오나와 결혼하기 전에 끝나지 못했습니다 . 그래서 그는 미처 신랑 예복을 벗기도 전에 군복을 입고 캔사스주 위치타에서 B29 비행기 책임을 맡아 떠나게 되었습니다 . 그는 제 2 차세계대전 중 사수와 엔지니어로 복무하게 되었습니다 . 군 복무 기간 중 그는 캔사스에서 플로리다로 이동되고 , 그 후에는 푸에르토리코와 남미로 보내졌습니다 . 그곳에서 핏은 또 다시 아프리카에 있는 골드코스트로 보내지고 , 그 후에는 이집트로 그리고 파키스탄으로 이송되었습니다 . 그의 최종 도착지는 중국과 버마간 극장전투와 티니시안 아일랜드였습니다 . 티니시안 아일랜드는 마리아나군도에 있는 세개의 섬 중 하나입니다 . 전쟁기간동안 핏과 그의 B29 전투기가 주둔하고 있었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.

이 기지에 주둔하고 있던 시절 , 펜실베니아출신의 젊은이에게 삶은 이국적인 것 ,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. 주둔 군인들은 산호를 헤치며 바다에서 수영을 하기도 했습니다 . 핏은 풍차를 만들어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다바람에 옷을 말리기도 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.

핏은 세번의 공중임무 수행을 했습니다 . 각 비행기마다 11 명의 군인이 탑승했는데 , 이들은 서로 인터콤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고 했습니다 . 5 시간의 비행 후 목표지점에 도달했을 때 이들은 모두 말이 없어졌습니다 . 영원히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하늘의 검은 홀이 떼지어 몰려오는 반딧불같은 대공 미사일의 작렬하는 불빛과 함께 분출되었습니다 . 핏은 후방사수였습니다 . 자신이 타고 있던 비행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주변을 핑핑 날아다니던 그 모든 포탄들로 인해 목표지점 위에서 그가 느꼈던 긴장에 대해 그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. 핏은 순응의 은총을 받은 자 , 바로 그런 사람 중 한사람인 것처럼 보입니다 . 세계제 2 차대전에 참전해 싸우는 것 , 그것은 바로 그가 생에서 겪은 하나의 엄연한 현실이었던 것입니다 .

한편 , 핏이 들려주는 이 이야기를 듣고있는 저는 베트남전이 남긴 상처 , 그리고 그 이후에 찾아 온 수많은 난제와 정치적인 전투들을 겪으며 살아 온 여성입니다 .

핏이 들려준 제 2 차세계대전 이야기는 내가 아는 그런 전쟁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. 손에 쥔 전화상으로 그의 차분한목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, 저는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듣고 또 들으면서 경이로워했던 그 케케묵은 옛말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. “ 그 시절은 모든 것이 지금보다 단순했어 ” 하는 말이 계속 반복됩니다 . 나는 항상 그것이 무슨 소리인가 ? 하고 의아해 했었습니다 . 30 년이 지나 핏의 이야기를 들으며 , 저는 그것을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.

전쟁이 끝나고 핏은 펜실베니아로 돌아오고 , 그 이후 줄곳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. 비행기에 대한 그의 경험은 자동차정비분야로 계속 공부를 연결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, 결국 그는 펜스테이트에서 교육학 학위를 받게 됩니다 . 핏은 이 지방에 있는 기술학교에서 충돌정비 과목을 가르치고 책을 썼습니다 . 아내 리오나와 함께 핏은 두명의 딸과 한명의 아들을 길렀습니다 . 첫부인이 사망 후 핏은 미리암과 재혼했습니다 . 핏에게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요청했더니 그는 이차 기억으로 아내 ‘ 밈 ’ 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.

핏은 정말 비범한 사람입니다 . 주변 사람들과 주변 세상이 모두 약간은 미친듯이 행동하는 가운데 그처럼 강인함을 지니고 81 년의 생을 살았다는 것 , 이것이야 말로 그의 삶에서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. 저는 더 이상 일시적인 영광을 누리는 락스타나 운동선수등을 우러러보며 저의 역할모델이나 영웅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.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지금 , 저는 이제 수많은 세월을 인내하고 살아온 , 그리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쓰러지지 않고 이겨낸 사람들을 우러러보게 된 것입니다 . 핏 , 감사합니다 . 저도 양초가 빼곡히 들어서 있는 생일케익의 촛불을 끄면서 생존 , 그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래봅니다 . 감사합니다 . 그리고 생일 축하합니다 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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